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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인칼럼 유준형] AI와 노인: 젊은이보다 노인이 더 잘 쓸 수도 있는 이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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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인칼럼 유준형] AI와 노인: 젊은이보다 노인이 더 잘 쓸 수도 있는 이유.

정브레인 2026. 3. 2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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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칼럼니스트]

지하철 5호선, 오후 세 시쯤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화면을 넘기지 않았다. 한 화면을 오래 붙들고,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읽고 계셨다. 옆자리 청년은 릴스를 쉴 새 없이 넘기고 있었다. 누가 더 유능해 보였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청년 쪽을 가리킬 것이다. 손이 빠르고, 화면에 익숙하고, 새 기능을 겁 없이 다루니까. 나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게 본다.

 

AI는 손가락이 빠른 사람의 기술이 아니다. 질문이 깊은 사람의 도구다.

 

소크라테스는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깊이 묻는 사람을 지혜에 가깝다고 보았다. 이천사백 년 전 말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이 정답을 외운 기계가 아니라, 질문에 반응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ChatGPT든 클로드든, 같은 AI에게 물어도 어떤 사람은 검색엔진 수준의 답을 받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을 바꿀 통찰을 받는다. 차이는 기기가 아니라 질문에서 갈린다.

 

바로 여기서 나는 노인의 가능성을 본다.

 

노인은 기술에 늦다. 이건 사실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줄이 밀리고, 무인주차장에서 당황하고, 앱 하나 깔자면 자녀에게 전화를 건다. 이 고충을 가볍게 넘길 생각은 없다. 디지털 소외는 실재하는 고통이고,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기술에 늦는 것과 기술을 못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노인에게는 젊은이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있다. 사람을 오래 겪은 시간, 실패를 견딘 근력, 선택의 무게를 몸으로 배운 감각.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구별하는 힘은 매뉴얼로 익히는 게 아니다. 살아내야 생긴다. AI 앞에서 "나한테 지금 뭐가 필요하지?"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앱 스토어 순위를 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의 빈자리를 아는 사람이다.

 

나이는 손을 늦출 수 있어도, 질문을 늦추지는 못한다.

 

생각해보면 AI가 노인의 일상에 들어올 자리는 이미 넘친다. 병원 예약 전에 증상을 정리해주고, 공공문서의 난해한 문장을 풀어주고, 자녀에게 보낼 문자를 조금 더 따뜻하게 다듬어준다. 혼자 사는 밤에 말벗이 되고, 궁금했지만 물어볼 데가 없던 것들에 답해준다.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삶의 반경을 다시 넓혀주는 일이다.

 

그래서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노인이 AI를 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왜 노인일수록 AI를 더 가까이해야 하느냐"로.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빨라지고, 제도는 복잡해지고, 설명서는 불친절해진다. "이제 나는 시대에서 멀어졌다"는 체념이 조용히 스며든다. AI는 그 체념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도구다. 정보에 다시 닿게 하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주고, 세상과의 연결을 되살린다. 인공지능은 젊은이의 장난감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다시 넓혀주는 지팡이가 될 수 있다.

 

물론 불편한 진실도 있다.

 

AI를 권하는 일 자체가 노인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될 수 있다. 화면은 낯설고, 용어는 어렵고, 배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두렵다. 그런데 기술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 건,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한마디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명하기 귀찮아서, 짜증이 나서. 돌이켜보면 기술을 가르친 게 아니라 자존심을 깎은 것이었다. 기계와 기술은 시험지가 아니라 지팡이여야 한다.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기대어 걸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노인에게 AI를 강요하는 일이 아니다. 노인이 자기 속도로, 자기 필요에서 출발해 익히도록 돕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AI 교육의 첫 질문은 "이 버튼을 누르세요"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불편하세요?"여야 한다.

 

미국의 투자자이자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었던 찰리 먼거는 지혜는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의 축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도 다르지 않다. 정보는 기계가 준다. 그러나 그 정보로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은 끝내 사람의 몫이다. 젊은 세대가 AI의 기능을 먼저 익힌다면, 노년 세대는 AI의 의미를 더 깊이 물을 수 있다.

 

기계는 정보를 준다. 그러나 삶의 방향은 끝내 사람이 정한다.

 

그렇다면 노인을 '디지털 약자'로만 부르는 말은 이제 고쳐야 한다. 노인은 배워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더 좋은 질문으로 기술이 가야 할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세대다. 어쩌면 미래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빠른 손가락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주변 어르신에게 "이거 어려우시죠?"라고 말하는 대신, "무엇이 가장 필요하세요?"라고 먼저 묻는 것이다.

미래는 젊은 손끝에서만 열리지 않는다.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의 질문 속에서도 열린다.

 

▲사진=구글 제미나이(나노바나나2)가 생성한 이미지. - 아날로그 지혜와 디지털 도구의 아름다운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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