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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미의 사랑의 미학]

강남 소비자저널 2026. 7. 1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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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는 우주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가르쳐준 사랑의 존재론과 환대의 미학



•글 | 손영미 (시인 · 극작가 · 칼럼니스트)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언어다. 우리는 사랑을 흔히 설렘과 열정으로 기억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감정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을 넘어, 한 존재가 걸어온 시간과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용(受容)'의 행위다. 사랑은 설렘으로 시작될 수는 있어도, 결국 수용을 통해 완성된다.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는 있지만, 혼자 완성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삶은 언제나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확장되고, 그 만남은 서로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관계란 타인을 이해하는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주체적인 용기다. 이러한 사랑의 근원성을 가장 단정하고도 깊이 노래한 작품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불과 몇 줄에 지나지 않는 이 시는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근본부터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이들, 카페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이 시대는 타인을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도구적인 '기능'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의 기능을 소비하고 있는가.”

정현종에게 사람은 현재의 단면 하나로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한 사람을 과거의 상처와 실패, 현재의 불안과 희망,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까지 품은 시간의 총체로 바라본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하나의 우주가 또 다른 우주와 조우하는 실존적 사건이다.

우리가 사랑을 쉽게 말하면서도 쉽게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사람 가운데 내가 원하는 일부만을 선택해 사랑하기 일쑤다. 밝음은 좋아하면서 우울은 견디지 못하고, 능력은 존중하면서 실패는 받아들이지 못하며, 오늘의 미소는 사랑하면서 어제의 상처는 부담스러워한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취향에 가깝다. 사랑의 존재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상대를 내 기준에 맞게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승인(承認)하는 일이다. 존재를 통째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기대를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어 인간 존재의 가장 취약하고도 근원적인 진실을 들려준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사랑의 본질은 강함이 아니라, 타인의 '취약성'을 품어 안는 능력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오면서 상실과 후회, 기다림 속에 저마다의 금이 간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깨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사랑이란 그 금을 억지로 메우거나 지워주는 일이 아니다. 그 틈새마저도 한 사람의 삶이 새겨놓은 고유한 역사로 존중하는 일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돕는 평온한 힘이다.

바람처럼 다가가는 사랑
시는 마지막에 이르러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바람은 소유하지 않는다. 소유하려 쥐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람은 억지로 방향을 바꾸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스치며 존재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람은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은유다. 사랑은 누군가를 내 방식대로 뜯어고치는 오만이 아니라, 그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환대(歡待)'의 진짜 얼굴이다. 환대는 단순히 예의를 갖추는 친절이 아니다. 상대를 내 삶 안으로 초대하는 용기이며, 나의 완고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그의 세계가 머물 수 있도록 내 영혼의 자리를 넓혀두는 일이다. 결국 사랑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영혼의 품, 즉 수용성의 깊이로 완성된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방문객을 만난다.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길가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이름으로. 정현종의 시는 우리에게 다시금 나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사람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기준을 만나고 있는가.”

그의 과거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현재를 성급히 해석하지 않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믿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근원성이며 존재를 향한 가장 우아한 예의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고,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내 삶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국 그 우주 앞에서 기꺼이 나의 세계를 넓히고, 상대를 온전히 환대함으로써 마침내 나 스스로가 사랑이 되어가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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