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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축구: 인공지능은 패턴을 찾고, 감독은 승부를 건다 본문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경기가 끝난 밤, 중계석의 박지성 해설위원이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이기려고 한 경기가 맞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닷새 뒤 새벽, 선수단은 인천공항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국민이 아픈 이유는 단순히 졌기 때문이 아니다. 축구는 질 수 있다. 상대가 강하면 밀리고, 운이 없으면 골대가 외면한다. 그러나 준비 없이 진 것처럼 보일 때 국민은 더 크게 상처받는다. 선수들은 뛰었는데 팀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땀은 흘렸는데 전술의 흔적이 희미할 때, 우리는 패배보다 무거운 허탈감을 느낀다.
조별리그 탈락 이후 한국 축구를 둘러싼 말들이 거칠다. 감독의 전술 부재, 선수 기용, 경기 중 대응, 대한축구협회의 책임을 묻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 글은 특정 감독을 조롱하거나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글이 아니다. 묻고 싶은 것은 더 크다. 한국 축구는 아직도 감독 개인의 감각과 선수 개인의 능력에 너무 많은 것을 맡기고 있지 않은가. 세계 축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경기를 읽는다. 우리는 여전히 “정신력”과 “경험”이라는 오래된 말에 기대고 있다.
축구는 감동의 경기이지만, 동시에 준비의 경기다. 90분 동안 공 하나가 굴러다니는 듯 보여도 그 안에는 수많은 길이 숨어 있다. 빌드업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공격수는 언제 수비 뒷공간으로 뛰는지, 상대는 실점 뒤 어느 쪽부터 흔들리는지까지, 모두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좋은 팀은 우연히 공격하지 않는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만들고, 상대가 그 길을 막으면 다음 길을 연다.
이제 그 길을 읽는 데 AI가 쓰인다. 이번 월드컵에서 FIFA가 레노버와 함께 개발한 분석 도구 ‘FIFA AI Pro’는 참가 48개국 전 팀이 사용했다. 수백만 개의 경기 데이터를 뒤져 보고서와 그래프, 영상으로 몇 분 만에 답을 내놓는다. 구글 딥마인드가 리버풀 구단 전문가들과 만든 ‘TacticAI’도 상징적이다. 프리미어리그 코너킥 7천여 개를 학습해, 누가 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지, 선수 위치를 어떻게 바꾸면 슈팅 확률이 달라지는지를 제안했고, 현장 전문가 평가에서 기존 전술보다 더 자주 선택받았다. 축구장의 직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직감이 놓친 장면을 다시 보게 만드는 새로운 눈이 생긴 것이다.
물론 우리 현장에도 밤새 영상을 돌려 보는 분석관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 노력이 감독 한 사람의 임기와 함께 흩어지는 구조다. AI는 상대의 전반 45분과 후반 45분을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에이스가 공을 받기 전 어떤 미끼 움직임이 있는지, 세트피스에서 반복되는 위치 이동은 무엇인지 찾아낸다. 그리고 그 분석은 훈련의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선수에게 50쪽짜리 보고서를 읽히는 것보다 10초짜리 핵심 AI 영상 하나가 강할 때가 있다. “상대 에이스에게 허겁지겁 달려들지 말고, 그에게 공이 가는 길목부터 차단하라.” 이런 메시지를 실제 장면과 그라운드 도식으로 보여주면 선수는 몸으로 먼저 이해한다. AI가 장면을 모으면, 코치는 그것을 훈련으로 옮기고, 선수는 반복으로 익힌다.
그러나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된다. AI가 패턴을 찾는다고 감독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AI가 수만 개의 선택지를 내놓을수록 감독의 수준은 더 중요해진다. 어떤 데이터를 믿고 어떤 장면을 버릴지, 어떤 선수를 세우고 언제 승부를 걸지는 결국 감독이 정한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찾고, 승부는 감독이 건다.
축구는 숫자로만 되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의 몸 상태, 라커룸의 공기, 주장 한마디의 무게, 실점 직후의 흔들림, 교체 선수의 눈빛은 데이터 바깥에 있다. AI는 많은 것을 분석하지만 선수의 마음을 책임지지는 못한다. 그래서 좋은 감독은 AI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시에 AI 뒤에 숨지도 않는다. 좋은 감독은 AI를 쓰되, AI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가 새겨야 할 것도 여기에 있다. 대표팀이 감독의 임기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즉흥 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국 전술 데이터베이스, 세트피스 분석실, 선수별 경기 영상 라이브러리, 분석관과 코치의 협업 체계를 제도로 남겨야 한다. 감독이 바뀌어도 대표팀의 축구 지식은 쌓여야 한다. 한 대회가 끝나면 사라지는 기억이 아니라,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감독의 역량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경험과 카리스마, 선수 장악력, 승부사 기질이 먼저였다. 지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AI를 부릴 줄 아는 능력이 감독의 기본기가 되어야 한다. 분석을 이해하지 못하면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못하면 책임질 수 없다. 감독의 경륜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버릴 줄 아는 판단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데이터는 길을 보여주고, 사람은 그 길을 선택한다.
국민은 대표팀이 늘 이기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준비한 축구, 납득할 수 있는 축구, 지더라도 다음이 보이는 축구를 원한다. 세계가 AI로 전술을 읽고 훈련을 바꾸는 시대에, 한국 축구가 선수 개인의 번뜩임에만 기대고 있다면 그것은 패배보다 큰 후퇴다. 선수들의 재능은 소중하다. 그러나 재능은 전술 안에서 빛나고, 전술은 준비 안에서 완성된다.
전술은 감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준비로 증명하는 것이다. AI는 그 준비를 더 촘촘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 박수든 비판이든 받아 안는 사람은 벤치의 감독이다.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 더 정확히는, 기술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독자에게 작은 제안 하나를 남긴다. 다음 경기를 볼 때 골 장면만 보지 말고, 골이 터지기 전 세 번의 패스를 함께 보시라. 그 세 번이 우연이었는지 준비였는지는 의외로 눈에 보인다. 패턴을 읽는 눈은 감독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음 월드컵이 끝난 밤, 우리는 중계석에서 어떤 질문을 듣게 될까?
참고자료
1. MBC 뉴스데스크. (2026.6.26). “전술이 없었다”…‘4강 신화’ 동료들마저 홍명보 비판.
2. 머니투데이. (2026.6.25). 박지성, 홍명보 전술 작심 비판 “이기려고 한 경기 맞나, 월드컵 준비 소홀”.
3. FIFA·Lenovo. (2026.7). All 48 Teams Use FIFA AI Pro at FIFA World Cup 2026 (레노버 공식 보도자료).
4. Google DeepMind. (2024.3.19). TacticAI: an AI assistant for football tactics (공식 블로그).
5. Wang, Z. et al. (2024). TacticAI: an AI assistant for football tactics. Nature Communications, 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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