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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미의 공연 클래식 칼럼] 네 개의 악기가 하나의 숨이 될 때 본문
-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파씨오 콰르텟을 듣고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Passio’는 라틴어로 수난, 고통, 열정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는 말이다. 영어 ‘Passion’의 어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뜨거운 열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과 인내, 때로는 고통까지 기꺼이 통과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씨오 콰르텟(Passio Quartet)이라는 이름은 음악가의 삶과 닮아 있다.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거듭되는 연습과 절제, 자신의 소리를 고집하기보다 다른 연주자의 호흡을 듣고 기다리는 시간. 열정으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인내 없이는 완성할 수 없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8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파씨오 콰르텟 공연은 바로 그 ‘함께 숨 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무대였다.
피아노 황건영, 바이올린 이근화, 비올라 권오현, 첼로 이세인으로 구성된 파씨오 콰르텟은 프랭크 브리지의 《환상 피아노 4중주 F♯단조 H.94》를 시작으로 생상스의 《피아노 4중주 제1번 B♭장조 Op.41》, 포레의 《피아노 4중주 제1번 C단조 Op.15》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작곡가의 인성(人性)이 담긴 작품들을 한 호흡으로 엮어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연주자의 호흡과 균형이었다.
피아노 사중주는 결코 만만한 편성이 아니다. 피아노의 풍부한 음량과 세 현악기의 섬세한 음색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 피아노가 지나치게 앞서면 현악기의 결이 묻히고, 현악기가 각자의 선율만 강조하면 전체의 구조가 흩어진다. 결국 앙상블의 핵심은 누가 더 잘 연주하는가가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얼마나 잘 듣는가에 있다.
이날 파씨오 콰르텟은 그 균형을 안정감 있게 보여주었다. 각 연주자의 기량도 수준급이었지만, 자신의 소리를 과시하기보다 서로의 호흡을 기다리고 받아주는 음악적 태도가 돋보였다. 바이올린이 선율을 열면 비올라와 첼로가 깊이를 만들고, 피아노는 때로 전체를 힘 있게 이끌다가도 한 걸음 물러서 현악기의 숨결을 살렸다.
첫 곡을 쓴 프랭크 브리지는 훗날 벤저민 브리튼을 키워낸 영국의 숨은 스승이자 빼어난 비올리스트였다.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 청년 브리지가 써내려간 《환상 피아노 4중주》에는 자유로운 형식 속에 특유의 방황과 낭만적 불안이 서려 있다. 하나의 감정에서 출발한 네 악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은 마치 황혼의 빛이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풍경을 보는 듯했다.
이어진 생상스에서는 분위기가 한층 명료해졌다. 철저한 고전주의적 절제와 완벽주의를 고수했던 프랑스의 천재 생상스답게, 그의 《피아노 4중주 제1번》은 선과 면이 또렷한 양식 건축에 가까웠다. 브리지의 음악이 감정의 안개 속을 걷는 듯했다면, 생상스는 지적이고 명쾌했다. 빠른 악장에서도 앙상블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네 성부가 질문하고 응답하는 음악적 대화에는 프랑스 특유의 논리적 긴장과 생기가 살아 있었다.
인터미션 후 연주된 포레의 《피아노 4중주 제1번 C단조》는 이날 공연의 정서적 중심이었다.
이 작품은 포레가 치열하게 사랑했던 연인 마리안 비아르도와의 파혼이라는 깊은 실연의 상처 속에서 완성된 곡이다. 특히 3악장 Adagio의 여운이 깊었다. 포레의 슬픔은 겉으로 절규하거나 내지르지 않는다. 낮은 현의 깊은 울림 위로 선율이 조용히 떠오르며, 가슴속 깊이 묻어둔 오래된 기억과 아린 이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꺼내 보이는 듯하다. 네 연주자 역시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절제된 호흡과 여백이 오히려 작곡가가 품었던 고요한 슬픔의 깊이를 더했다.
음악에서 침묵은 소리가 없는 순간이 아니다.
다음 음을 기다리는 마음의 시간이다.
그 기다림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실내악은 비로소 독주와는 다른 세계를 연다. 마지막 악장에서 다시 솟아오른 에너지도 단순한 환희라기보다 어둠과 아픔을 지나온 뒤 마주하는 밝음에 가까웠다.
에필로그 | 마지막 한 곡, Je te veux
긴 박수 끝에 네 연주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앙코르로 흐른 에릭 사티(Erik Satie)의 〈Je te veux〉.
파리의 몽마르트르 카페 '샤 누아르'에서 피아노를 치며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던 사티가 세상에 건넨 다정한 고백. 브리지의 황혼과 생상스의 명료한 빛, 포레의 상처와 내면을 지나 마지막에 도착한 음악은 뜻밖에도 가장 단순하고 따스한 사랑의 언어였다.
Je te veux — 당신을 원합니다.
사티 특유의 우아한 왈츠 선율이 네 악기의 숨결을 타고 흐르자 공연장은 조금 전까지의 묵직한 긴장에서 벗어나 한결 부드러운 온기로 채워졌다. 긴 이야기를 모두 마친 뒤 마지막 편지에 적어놓은 한 줄의 고백처럼 들렸다.
화려하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더 많은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수많은 음표와 삶의 애환이 지나간 뒤 남은 것은 오히려 가장 짧고 솔직한 한 문장이었다.
앙코르가 끝나고 네 연주자가 무대 위에 나란히 섰다. 객석에서는 긴 박수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Passio’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열정은 혼자 뜨겁게 타오르는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디며 서로의 온도를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내악 또한 자신의 소리를 크게 내는 예술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도록 귀 기울이는 예술이다.
음악도 사람의 관계도 결국
잘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데서 깊어진다.
무대의 불은 내려가고 연주자들은 떠났지만 사티의 다정한 왈츠는 쉽게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좋은 앙코르는 공연을 다시 시작하는 음악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연주되게 하는 음악인지도 모른다.
그날 파씨오 콰르텟의 마지막 한 곡이 그랬다.
음악은 끝났지만 사랑의 문장은 오래 남았다.
좋은 음악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오래도록 앙코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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