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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옥 칼럼] 최진희의 꼬마인형, 금지된 사랑의 서사 기다림과 황홀 그리고 부서지는 모래성의 비유 본문
[강대옥 칼럼] 최진희의 꼬마인형, 금지된 사랑의 서사 기다림과 황홀 그리고 부서지는 모래성의 비유
강남 소비자저널 2026. 4. 1. 01:12- 불완전한 관계가 빚어내는 탐닉과 슬픔의 현상학

[강남 소비자저널=강대옥 칼럼니스트]
1. 이 노래는 왜 애틋하게 들리는가
우리는 왜 타인의 비극적 사랑에 매료되는가? 특히 그것이 사회적 윤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금지된 사랑’일 때, 그 서사는 더욱 강렬한 전염성을 띤다. 제시된 가사 속에 흐르는 감정의 선율은 표면적으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날카로운 칼날 같은 현실의 단면들이 숨어 있다.
“황홀한 시간”, “잊을 수 없음”, “기다림”과 같은 단어들은 사랑의 보편적인 언어다. 하지만 이 가사를 구성하는 맥락을 한 꺼풀 벗겨내면, 우리는 그 안에서 제한된 시간, 완성될 수 없는 구조, 그리고 비대칭적 위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은 이 노래의 화자를 미혼 여성으로, 대상을 유부남으로 설정하여 이 관계가 지닌 에로티즘의 본질과 구조적 비극을 탐구하고자 한다.
2. “그날 밤 황홀한 시간” ― 순간의 절대화와 일상의 소외
“그날 밤 황홀한 시간을 / 난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첫 구절은 관계의 시공간적 배경을 명확히 규정한다. 이 사랑은 ‘낮’의 영역이 아니라 ‘밤’의 영역에 속해 있다. 사회적 지위와 책임, 가족과 의무가 지배하는 낮의 시간이 끝나고, 오로지 두 사람의 육체와 감정만이 실재하는 특정한 밤, 그 찰나의 순간이 이 관계의 전부다.
사건으로서의 사랑
유부남과의 관계에서 사랑은 삶의 연속성이 아니라 ‘이벤트’로 존재한다. 그들은 장을 보고, 세금을 내고,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오직 화려하고 뜨거운 ‘그날 밤’이라는 점(點)의 시간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기억의 물신화
현재를 함께 살 수 없는 연인들에게 기억은 종교가 된다. "잊을 수 없다"는 선언은 역설적으로 그 기억 외에는 붙잡을 실체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만남의 매 순간을 비현실적인 황홀경으로 치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남겨진 긴 시간의 공백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3. “맨 처음 당신을 알고 말았죠” - 돌이킬 수 없는 인식과 금기의 매혹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 당신을 알고 말았죠”
여기서 ‘알다’라는 동사는 성서적 의미의 ‘알다(yada)’에 가깝다. 그것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육체적, 영혼적 결합을 통한 인식이다. 특히 “알고 말았죠”라는 종결 어미에는 화자의 의지를 넘어선 ‘사건성’이 내포되어 있다.
운명이라는 핑계
금지된 사랑에 빠진 이들은 흔히 자신의 선택을 ‘운명’이나 ‘사고’로 규정한다. “알고 말았다”는 표현은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유예시키려는 무의식적 기제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친 이 강렬한 인식이 나를 지배해버렸다는 서사다.
인식의 불가역성
한 번 선악과를 맛본 인간이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듯, 금지된 관계의 쾌락과 고통을 인식한 화자에게 그 이전의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 지점에서 에로티즘은 ‘파괴적 성격’을 띤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서라도 그 인식을 지속하려는 갈망이 바로 이 사랑의 동력이다.
4. “늦어도 그날까지” - 시간의 유예와 희망의 고문
“늦어도 그날까지 / 약속만을 남겨둔 채로”
금지된 사랑의 서사에서 ‘약속’은 가장 잔인한 장치다. 그 약속은 대개 실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고통을 유예시키고, 관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마취제’에 가깝다.
지연된 결말
“늦어도 그날까지”라는 모호한 시점은 남성이 여성에게 제공하는 최소한의 도피처다. 아내가 아이를 다 키울 때까지, 사업이 정리될 때까지, 혹은 막연히 ‘언젠가’까지. 이 약속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가두는 벽이 된다.
희망의 비대칭성
여성은 그 약속을 실현될 미래로 믿으며 ‘기다림’을 선택하지만, 남성에게 그 약속은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여기서 시간은 두 사람에게 다르게 흐른다. 여성의 시간은 약속의 날을 향해 수렴되지만, 남성의 시간은 일상과 일탈 사이에서 분산된다.
5. “떠나갈 사람이여” - 이미 예정된 이별과 새벽의 허무
“밤이 지나고 새벽 먼 길을 / 떠나갈 사람이여”
에로티즘의 절정은 항상 죽음이나 이별의 예감과 맞닿아 있다. 새벽은 비밀스러운 밤의 제국이 무너지고 현실의 법이 다시 세워지는 시간이다.
귀환의 구조
남자는 ‘떠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영원히 머물 수 없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본가(本家)’가 있고, 지켜야 할 ‘성(城)’이 있다. 화자는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자신의 위치가 ‘정거장’에 불과함을 재확인한다.
비대칭적 공간
남자는 두 세계를 오가지만, 여자는 오직 그가 머물다 간 공간에 고립된다. 새벽 먼 길을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은 이 관계의 본질적 고독을 시각화한다. 그는 떠남으로써 일상을 회복하고, 여자는 남겨짐으로써 비일상을 지속한다.
6. “부서지는 모래성을 쌓으며” - 관계의 본질적 취약성과 시지프스적 반복
“부서지는 모래성을 / 쌓으며 또 쌓으며”
이 구절은 이 사랑의 가장 완벽한 메타포다. 모래성은 아름답지만, 파도가 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화자는 이 관계가 무너질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견고한 시멘트 성이 아니라 모래로 만든 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쌓으며”라는 표현은 이 행위가 반복적임을 보여준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쌓는 행위는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연상시킨다.
과정의 탐닉
모래성은 결과물로서의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쌓는 동안의 몰입과 접촉이다. 금지된 사랑 역시 ‘결혼’이나 ‘안정’이라는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에, 그들은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 자체에 극단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부서지기 쉬운 취약성(Fragility)이 오히려 이 사랑의 에로티즘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된다.
7. “나는 기다릴래요” - 주체적 수동성과 종속의 미학
“나는 기다릴래요”
기다림은 언뜻 수동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 서사 속에서는 화자가 선택한 능동적인 고통이다.
권력의 불균형
남자가 이동의 자유(Mobility)를 가진 주체라면, 여자는 정주하며 기다리는 객체로 설정된다. 이 비대칭성은 관계의 권력을 남자에게 집중시킨다. 여자의 기다림은 남자의 자비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행위와 다름없다.
자기희생적 쾌락
"기다릴래요"라는 선언 속에는 일종의 순교자적 쾌락이 숨어 있다. 자신이 입는 피해와 고독을 사랑의 크기로 치환하며,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고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에로티즘의 변주다.
8. 이 사랑은 왜 아름답게 들리는가: 결핍의 미학
이 노래가 도덕적 지탄을 넘어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인간 본연의 결핍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완성되지 않은 것의 영원성
모든 완성된 사랑(결혼)은 일상이 되고 식어간다. 하지만 완성되지 못한 사랑은 그 결핍 때문에 영원히 타오르는 상태로 기억 속에 박제된다. 모래성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음속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이상향’이 된다.
긴장의 미학
금기는 욕망을 증폭시킨다. 사회적 시선, 죄책감, 이별의 공포라는 장애물들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 밀도를 일반적인 연인들보다 몇 배나 높여 놓는다. 청자들은 노래를 통해 그 위험천만한 긴장감을 대리 체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9. 사랑인가, 구조인가
결국 이 노래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처한 위치와 시공간의 제약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뒤틀고, 동시에 아름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보고서다.
화자가 쌓는 모래성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새벽이 오면 남자는 떠날 것이고, 약속의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 허무를 알면서도 다시 모래를 쥐어 성을 쌓는다. 왜냐하면 그 성을 쌓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누군가를 열렬히 갈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말한다. 어떤 사랑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뜨겁게 부서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 부서짐의 파편들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황홀했던 기억의 조각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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