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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본문
💬 달콤한 말이
[경전산책 57]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반열반 가운데 네 종류 사람이 바른 법을 수호하고 바른 법을 세우며 바른 법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겨, 세간의 의지가 되고 천상과 세간 사람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고도 번뇌의 성품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이 첫째이며, 수다원(須陀洹)을 얻은 사람과 사다함(斯陀含)을 얻은 사람은 둘째이며, 아나함을 얻은 사람이 셋째이며, 아라한을 얻은 사람이 넷째이다. 이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간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어떤 이를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이라 하는가?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위의를 갖추어 바른 법을 세우며, 부처님께 들은 것을 글과 뜻을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분별하고 연설한다. 탐욕이 없는 것은 도이고 탐욕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라 하며, 큰 사람이 깨달을 여덟 가지 법을 자세히 말한다. 죄를 지은 이에게는 죄를 털어 놓고 참회하게 하고 제거하여 소멸하게 하며, 보살의 방편으로 행하는 비밀한 법을 잘 안다. 이는 범부이고 제8인(人:忍)이 아니며, 제8인은 범부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하며, 부처라고는 하지 않는다.
둘째는 수다원과 사다함이니, 바른 법을 얻으면 그대로 받아 지니며,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말한다. 만일 법을 듣고도 쓰지 않고 받아 가지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 하인이나 부정한 물건을 쌓아 두라고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를 둘째 사람이라 하니, 이 사람이 비록 둘째 자리나 셋째 자리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이름을 보살이라 하며 수기를 받은 것이다.
셋째는 아나함이니, 아나함은 바른 법을 비방하거나 종이나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두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하거나, 외도들의 경과 논을 받아 가지거나, 객진(客塵) 번뇌에 장애가 되거나, 모든 업의 번뇌에 덮여 있으며, 여래의 진실한 사리(舍利)를 간직하였거나, 밖의 병(病)의 해침을 당하거나, 4대 독사의 침해를 받거나, 나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옳은 것이며, 세상 법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옳지 않고 대승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옳은 것이다. 태어나는 몸에 8만의 벌레가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않고, 음욕을 영원히 떠나서 꿈에서도 부정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옳은 것이며, 임종할 때에 두려움을 낸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 아나함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음은 위에 말한 것과 같으며, 모든 허물이 영원히 오염시키지 못하고 오고 가면서 주선하므로 보살이라 이름하고, 이미 수기를 받았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것을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한다.
넷째는 아라한이니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어 무거운 짐을 버렸고, 자기의 이익을 얻어 할 일을 이미 마쳤고, 제10지에 머물렀으며,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지가지 빛과 몸매를 모두 나타내어 모든 장엄과 같이하여, 부처님 도를 이루려 하면 곧 이룰 수가 있다.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아라한이라 한다. 이러한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하여,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여래와 같으므로 사람 가운데 수승하며 귀의할 곳이 되는 것이다.”
그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사라경(瞿師羅經)』에서 부처님께서 구사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들이 바른 법을 파괴하려고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화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를 두루 갖추고, 둥근 광명이 한 길이며, 얼굴은 보름달처럼 원만하고 양미간의 백호상(白毫相)은 옥이나 눈보다도 희다. 이렇게 장엄하고 너에게 올 것이니 너는 잘 살펴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정하여야 하며, 깨닫고 나서는 항복받아라’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마군들이 부처님의 형상으로도 변화하는데 하물며 아라한 등의 네 가지 몸으로 변화하지 못하겠습니까? 허공에서 눕고 앉으며 왼쪽 옆구리로는 물을 내고 오른쪽 옆구리로는 불을 내며, 몸에서 불꽃과 연기 내기를 불더미같이 할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는 그 속에서 신심을 낼 수 없으며, 혹 말을 하더라도 그대로 받을 수 없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하는 말에도 의심이 있으면 그대로 받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그런 것에 있어서이겠느냐? 그러기에 잘 분별하여 좋은 일인지 좋지 못한 일인지, 할 만한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를 알고서 행하면 긴긴 밤중에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선남자야, 도둑개가 밤에 집에 들어오는 것을 그 집 하인들이 알았으면, 곧 호령하여 쫓아 보내면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도둑개가 듣고 곧 도망갈 것이다. 그대들도 오늘부터 파순을 항복시켜야 하니 파순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는 그런 형상을 꾸미지 마라. 만일 일부러 꾸민다면 다섯 가지 속박으로 너를 묶을 것이다.’
그러면 파순이 듣고 곧 달아나기를 도둑개같이 하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중략]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6권
“세존이시여,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들에게 마땅히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야, 나의 말과 같이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 가지 마군이 있는 까닭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군이 말한 경전과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마군1)과,마군이 말한 것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저희들이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중생이 마군의 행을 따르는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그런 무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가섭아,내가 열반한 지 7백 년 뒤에 마왕 파순이 점점 나의 법을 혼란하게 할 것이다. 마치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입듯이 마왕 파순(波旬. Pâpîyâs)2)도 그와 같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모양을 가장하기도 하고, 또 수다원(須陀洹)의 몸과 아라한의 몸과 나아가 부처님의 몸을 꾸미되 마왕의 유루한 형상으로 무루한 몸을 가장할 것이다. 마왕 파순이 나의 바른 법을 파괴하면서 말할 것이다.
‘보살이 옛날에 도솔천에서 없어지고 이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올 때에 부모가 애욕으로 접촉한 것에 의지하여 그 몸을 낳아 기른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에 나서 모든 세간의 인간과 하늘 대중에게 공경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적에 고행할 때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나라와 처자까지 가지가지로 보시한 까닭에 지금 불도를 이루었으며, 그런 인연으로 천상 사람ㆍ세간 사람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3)의 공경을 받는다.’
만일 이렇게 말을 한 경전이나 계율이 있으면 마군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만일 경과 율에 말하기를
‘여래는 벌써부터 불도를 이루었지만 지금 성불하는 일을 보이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부모의 애욕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따르기 위하여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다면, 이런 경과 율은 참으로 여래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른다면 마군의 권속이며,부처님께서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래가 처음 태어났을 때 시방[十方]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여래가 세상에 나서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것은 여래가 방편으로 보인 것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여래가 말씀한 경전과 율이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중략]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7권4)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무엇이 마군의 말이고, 무엇이 부처님의 말씀인가
— 참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법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어떤 가르침이 나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 이끄는가?
『대반열반경』 제6권과 제7권에서는 이 문제를 매우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깊은 대반열반의 가르침 속에서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
바른 법을 지키고 세우며, 그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어 갈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하늘과 인간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세간의 의지’란,
혼란과 방황 속에서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는 든든한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길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네 종류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직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계율을 지키며 바른 법을 전하는 사람,
수행의 문을 열어 더 이상 거친 악행으로 돌아가지 않는 단계에 들어선 사람,
번뇌가 크게 옅어져 다시 세속의 집착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단계에 이른 사람,
그리고 마침내 모든 번뇌를 끊어 참된 자유에 이른 사람까지를 가리킵니다.
중요한 것은 단계의 높고 낮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모두 바른 법을 왜곡하지 않고,
사람들의 탐욕과 집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가섭보살은 걱정합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을 흐리게 하는 마군이 부처님의 형상으로,
아라한의 모습으로, 성인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하고, 말은 번듯하고, 기적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과연 정법일까요?
부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이라 하더라도 잘 분별하여라.”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방향이 다른 말들이 있다는 겁니다.
“마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처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보살행은 과장된 이야기다.
여래가 일곱 걸음 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등”
겉으로는 합리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다릅니다.
깨달음의 위엄을 낮추고, 수행의 깊이를 약화시키며,
해탈의 가능성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군의 말은 대개 수행을 느슨하게 만들고, 집착을 정당화하며,
“이 정도면 됐다”는 안일함에 머물게 합니다.
반대로 부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여래는 본래 성불하였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남을 보인 것이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정법은 중생을 끌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중생을 일으켜 세우는 말입니다.
정법은 욕망을 합리화하지 않고, 욕망을 넘어가게 합니다.
그 끝은 늘 자유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수행할 필요 없다.”
“편하게 살아도 된다.”
이 말들은 달콤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물어야 합니다.
그 말이 나를 더 깨어 있게 합니까, 아니면 더 안일하게 합니까?
그 가르침이 내 탐욕을 줄입니까, 아니면 탐욕을 정당화합니까?
그 길이 나를 자유롭게 합니까, 아니면 더 붙잡히게 합니까?
이 질문들이 바로 분별의 기준입니다
경전은 또 말합니다.
수행을 흐리는 힘, 곧 ‘마군’은 네 방향에서 우리를 흔듭니다.
내 몸과 생각에 대한 집착,
마음속 욕망과 성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바깥의 유혹과 혼란.
그런데 이 마군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는 마음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인지 좋지 못한 일인지,
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행하면
긴 밤중에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결국 분별은 지혜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계율을 지키는 삶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경전은 먼저
‘의지할 만한 사람’을 말하고,
이어 ‘가르침을 분별하는 기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질문을 마음에 남겨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달콤한 말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깨어 있게 하는 말을 따르고 있는가.
그 가르침은 내 욕심을 줄이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단단히 묶고 있는가.
오늘 하루,
내 마음을 조금 더 맑게 만드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보십시오.
오늘은 그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1) 네 가지 마군이란 온마(蘊魔),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천자마(天子魔) 이다. 이와같은 마군들은 사람들이 행하는 도를 파괴하는 자로 보살의 수행을 방해하는 원수이다. 온마(蘊魔 ,skandha-māra)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 쌓여 생사 고통의 과보가 생성되므로 마라 한다. 번뇌마(煩惱魔 ,kleśa-māra)란 몸 안의 108번뇌가 마음을 어지럽혀 혜명(慧命)을 빼앗고 보리(菩提)를 성취할 수 없게 하므로 마라 한다. 사마(死魔, mrtyu-māra)란 중생의 사대(四大)를 흩어 없애고, 수행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므로 마라 한다. 천자마(天子魔, deva-putra-māra)란 사람의 선한 일을 해치고 성인의 법을 시기하여 수행인으로 하여금 출세간의 선근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므로 마라 한다.
2) 파순을 파비야(波卑夜) 또는 천마파순(天魔波旬)이라고도 표현하며 항상 권속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정법을 방해하고 불도를 이룸에 있어서 방해를 하는 마왕이다.
3) 불교의 여덟 수호신인 천 · 용 · 야차 · 건달바 · 아수라 · 가루라 · 긴나라 · 마후라가는 서역을 거쳐 중국이나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장(武將) 모습으로 정형화되어 신라시대에는 탑에 가장 많이 조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불화(佛畫) 특히 후불탱화 등에 조성되었다.
4) 『대반열반경』 제7권 사정품(邪正品)에는 무엇이 정도와 사도인지 자세히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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