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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하정언 칼럼 (4)
<공식> 창업경영포럼 ESM소비자평가단 대상 소비자저널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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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과 이당 김은호 [강남 소비자저널= 하정언 칼럼니스트] 이당 김은호는 3.1 운동 33인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마지막 어진 화사로서 고종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았던 이당은 이미 어진화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고문과 취조가 더욱 심했다. ▲사진=판결문 ⓒ강남 소비자저널1919년 1월경에 고종을 왜 만났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을 잘못 하다간 많은 신하가 죽게 될 수 있기에 함구 할 수 밖에 없었다.북경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조정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윌슨 대통령을 누구의 명령으로 그렸는지 ?태극기를 직접 그렸는지? 등 3.1 독립만세 운동이 결국 고종의 죽음으로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퍼졌기에 이당에게 취조와 고문은 말할 수 없이 심했다. 33인 독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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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당 김은호의 고향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강남 소비자저널=하정언 칼럼니스트] 1892년 인천 문학산 밑 향교리 현에서 부농인 상산 김씨 2대 독자로 출생하였다. 예로부터백학이 많이 날아오는 문학산이 선산이었으며 . 향교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훈장을 하시며 학문과 예절을 배운다. 조부는 김용의, 부친은 김기일, 모친은 의성 김씨이다. 어린 시절 글방에서 한문을 배우며 성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신당 (神堂)의 탱화를 모사하는 등 그림에 상당한 재주를 보였지만 글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여 자연스레 신학문의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06년 개화기에 들면서 인천에 새로 생긴 인천 관립 일어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그 후 사립 인천 인흥 학교 측량과에 입학을 한다. 당시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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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당 김은호 [강남 소비자저널=하정언 칼럼니스트] 그의 나이 만 20살 이었다. 처음에는 고종의 눈에 띄어 고종의 어진을 그리려 했으나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어린 순종 어진부터 그리게 된다. 서화백년 1919년 기미 3.1 운동 고종과 순종을 모신 마지막 어진 화사로서 나라가 없는 왕의 어진을 그리며 처절한 비애와 슬픔을 함께 하였다. 1919. 1.12 일본군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로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힘을 다하여 의친왕과 육당 최남선등과 함께 취운정에서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돌리다 일본 군에 잡혀 청년 어진 화사 김은호는 종로경찰서로 잡혀가 몽둥이 매질과 불에 달군 꼬챙이로 고문을 받아 8번이나 기절을 한다.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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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소비자저널=하정언 칼럼니스트] 이당 김은호의 남원 춘향이의 영정이 떼어진다는 사실에 다시 또 한번 논개 영정의 이야기와 그 외에 있었던 친일 화가의 오명으로 가슴 아팠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친일이라서 안된다는 이론에 싸우는 논리를 펼쳐야하는가 ? 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이당을 이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진 이 시점에 유족의 마음은 어떨까요? 지금 어린 세대들에게 이당 김은호를 작품전시회로로 알리지 못하고 과거의 역사적 프레임으로 알리게 된 것에 대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우리들은 과연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옳고 그름을 가려 양분화를 극대화 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로벌의 케이 컬쳐는 이미 전세계로 우뚝 서서 문화 강국으로 인정 받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