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공식> 창업경영포럼 ESM소비자평가단 대상 소비자저널 보도자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6 본문

보도자료 및 언론 소비자평가 기본정보/연재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6

황해회장 2026. 8. 14. 23:28
반응형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6
 

📩 우리는

정말 바르게 보고 있을까요?
『삼혜경』은 말합니다.
사람은 네 가지 전도된 생각에 빠져
세상을 거꾸로 보고 살아간다고.
왜 우리는 바르게 살기 어려운지,
오늘 경전산책에서
함께 살펴봅니다. 🙏
 
 
 
[경전산책 66]
 
왜 우리는 바르게 살기 어려운가
 
네 가지 전도(顚倒)가 있으니, 첫째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둘째는 괴로운 것을 사람들이 즐겁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만물이 모두 공한데 사람들이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넷째는 몸이 아닌데 탐욕으로 몸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전도된 견해에 떨어져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헤아리고, 괴로운 것을 즐겁다 여기며, 공한 것을 진실이라 여기고, 몸 아닌 것을 몸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이러고도 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뜻이 네 가지 전도에 떨어진 까닭에 이것이 내 몸이라고 계교하며, 자세히 더듬어 몸 안에 아무 것도 없다고 헤아리고 나서는 아무 것도 없다며 곧 공에 떨어지고, 공에 떨어지고 나선 몸이 없다고 하고, 몸이 없다고 하고 나선 곧 무위에 떨어진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어리석음이 있어서 항상 네 가지 전도에 집착하니, 첫째는 만물이 영원하지 못한데 스스로 영원한 것이라 여기며, 둘째는 천하가 모두 괴로운데 사람들은 그것을 즐겁다 하며, 셋째는 천하가 공한 것인데 사람들은 진실이라 하며, 넷째는 몸은 몸이 아니라 보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몸이라 여긴다. 또 다섯째는 달이 처음 솟아오를 때 절을 하며, 여섯째는 보름달이 완전히 밝을 때 꿇어앉아 쳐다보며, 일곱째는 여자가 어릴 땐 사람들에게 안기고, 여덟째는 여자가 크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네 가지 매우 어려운 일이 있다. 첫째 도를 얻은 사람과 자리를 함께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이른바 12현자를 말한다. 둘째 경을 듣고 마음에 새기기가 어려우니, 이른바 8난처(難處)에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근본과 같이 보기가 어려우니, 이른바 4전도(顚倒)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넷째 법답게 행하기 어려우니, 이른바 계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둘째는 경을 듣기 어렵고, 셋째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넷째는 착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다섯째는 사람 몸 얻기가 어렵다.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가난하면서 보시하기가 어렵고, 둘째는 부귀하면서 참기가 어렵고, 셋째는 일과 연관되어 관리를 만났을 때 속이지 않기가 어렵고, 넷째는 단정한 여인과 같은 자리에 눕고도 뜻이 어지럽지 않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면서 상해를 입히지 않기가 어렵다.
 
일곱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경을 받아들이고서 묻기가 어렵고, 둘째는 경을 듣고서 뜻을 알기가 어렵고, 셋째는 지혜가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넷째는 스스로를 가르치고 또 남을 가르치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스스로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기가 어렵고, 여섯째는 자신의 뜻도 이미 안정되고 남의 뜻도 안정시키기가 어렵고, 일곱째는 항상 법을 여의지 않아 불도를 얻는 데 이르기가 어렵다.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매우 있기 힘든 열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둘째는 비록 부처님이 계신 세상을 만났을지라도 사람의 몸을 성취하기가 어렵고, 
셋째는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을지라도 중심이 되는 나라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넷째는 비록 중심이 되는 나라에 태어났을지라도 좋은 집안에 태어나기가 어렵고, 
다섯째는 비록 좋은 집안에 태어났을지라도 사지와 여섯 감관이 온전하기가 어렵고, 
여섯째는 비록 사지와 여섯 감관이 온전할지라도 재산을 갖기가 어렵다.
일곱째는 비록 재산을 얻었을지라도 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렵고, 
여덟째는 비록 선지식을 만났을지라도 지혜롭기가 어렵고, 
아홉째는 비록 지혜로울지라도 마음을 삼가고 조심하기가 어렵고, 
열째는 비록 마음을 삼가고 조심할지라도 보시하기가 어렵고, 
열한째는 비록 보시할지라도 현명하고 선하며 덕스러운 사람을 만나려 하기가 어렵고, 
열두째는 비록 현명하고 선하며 덕스러운 사람을 만났더라도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가 어렵다.
열셋째는 비록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더라도 만날 기회를 얻기가 어렵고, 
열넷째는 비록 만날 기회를 얻었을지라도 듣고 묻기가 어렵고, 
열다섯째는 비록 듣고 물었더라도 충실하고 바르게 하기가 어렵고, 
열여섯째는 비록 충실하고 바를지라도 지혜를 알기가 어렵고, 
열일곱째는 비록 지혜를 알았을지라도 깊은 경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열여덟째는 비록 깊은 경을 이해했을지라도 거듭거듭 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매우 있기 힘든 열여덟 가지이다.
 
삼혜경(三慧經)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6]
 
왜 우리는 바르게 살기 어려운가
— 『삼혜경』이 말하는 거꾸로 보는 마음
 
안녕하세요.
우리는 매일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옳다고 믿는 길을 따라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거꾸로 보고 살고 있을까요?
혹시 거꾸로 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바르게 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함께 살펴볼 경전은 『삼혜경』입니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뒤바뀐 생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공한 것을 진실한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넷째는 고정된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몸과 마음을 ‘나’라고 붙잡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불교에서는 전도, 곧 뒤바뀐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반야심경』에서도 이러한 뒤바뀐 생각을 ‘전도몽상’이라 하여,
거꾸로 보고 헛되이 집착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오래 붙잡으려 합니다.
몸도, 젊음도, 관계도, 재물도, 지위도 언젠가는 변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괴로움의 씨앗을 즐거움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욕심을 채우면 행복할 것 같고, 남보다 앞서면 마음이 편할 것 같고, 내 뜻대로 되면 괴로움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비교는 더 깊은 불안을 만들며, 집착은 결국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또 우리는 공한 것을 진실한 실체처럼 붙잡습니다.
사람도, 일도, 감정도 여러 인연이 모여 잠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고, 내 것이라고 붙잡고,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굳게 붙잡습니다.
몸은 변하고, 감정은 흔들리며, 생각은 순간순간 달라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몸이 곧 나이고, 이 감정이 곧 나이며, 이 생각이 곧 나라고 여깁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뒤바뀐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바르게 보지 못하고, 바르게 살기도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거꾸로 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바르게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도를 얻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은 자꾸 어긋나고, 마음은 자주 흔들립니다. 
우리는 분명 더 잘 살고 싶어 노력합니다.  
그런데 왜 마음은 자주 흔들리고, 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까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깥 세상을 바꾸려 애쓰지만, 정작 내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잘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도된 마음이 또 다른 치우침을 낳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몸을 ‘나’라고 집착하다가, 그 집착을 내려놓으려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다고 여기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습니다.
공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이루어졌으니 붙잡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알 때 우리는 집착에서도 벗어나고, 허무에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삼혜경』은 이어서 사람으로 살아가며 바른 길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말씀합니다.
부처님 계신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바른 가르침을 듣기 어렵고, 훌륭한 스승과 착한 인연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또 설령 가르침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한 것을 삶으로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지혜를 알았더라도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비록 깊은 가르침을 이해했더라도 그 길을 거듭거듭 이어 가기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다시 돌아보면 한 가지 분명해집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수많은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자체가 이미 얻기 어려운 인연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멀리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영원하다고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즐거움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진실한 실체처럼 붙들고 있는지,
무엇을 ‘나’라고 고집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먼저 바르게 보는 일입니다.
거꾸로 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비로소 방향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집착하고 있음을 알 때, 조금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착각하고 있음을 알 때,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붙잡고 있음을 알 때, 조금 더 가볍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을 마치며 이런 물음을 남겨 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거꾸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는 이 귀한 인연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잠시 멈추어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은 수없이 얻기 어려운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자리입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