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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언 칼럼] 독립운동가 이당 김은호의 삶과 예술_1 본문
-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당 김은호
[강남 소비자저널=하정언 칼럼니스트]
그의 나이 만 20살 이었다.
처음에는 고종의 눈에 띄어 고종의 어진을 그리려 했으나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어린 순종 어진부터 그리게 된다. 서화백년 1919년 기미 3.1 운동 고종과 순종을 모신 마지막 어진 화사로서 나라가 없는 왕의 어진을 그리며 처절한 비애와 슬픔을 함께 하였다.
1919. 1.12 일본군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로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힘을 다하여 의친왕과 육당 최남선등과 함께 취운정에서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돌리다 일본 군에 잡혀 청년 어진 화사 김은호는 종로경찰서로 잡혀가 몽둥이 매질과 불에 달군 꼬챙이로 고문을 받아 8번이나 기절을 한다.
그 이후 서대문 형무소로 입옥 6개월만에 1년 형을 받았으나 악성 폐렴과 각혈, 혈변으로 죽음을 오가며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졌다. 그때 고문 받은 고통으로 평생 폐렴으로 고생하였다.
독립운동 33인 중 한 분인 신석구 목사와 한 방에서 옥살이를 하였고 옆방에는 만해 한용운과 육당 최남선이 있었다. 당시 혹독한 고문과 같은 방을 쓰던 독립운동가들 중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직업이 화가였던 건 젊은 28세의 어진 화사 김은호와 스승인 심전 안중식 선생뿐이었는데 젊은 김은호보다 연로하셨던 안중식 선생은 그 해 9월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하셨다.
서화 미술회 최고의 스승이셨던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 선생이 돌아가신 후 유일하게 조선의 고유 전통 미술(북종화의 인물 채색화 )을 계승할 사람은 이당 김은호 뿐이었다.
서대문 형무소 출소 후 신석구 목사로부터 신앙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만해 한용운 등과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짐하며 굶주린 가족들을 데리고 유심사(한용운이 운영하던 출판사)로 이사해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출판 등의 일을 한다.
이후 이당의 집에 모인 마련한 독립자금은 일엽스님의 아들(이당의 양아들 ) 김태신에 의해 만공(수덕사), 만해 (심우장)으로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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